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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을 이야기~♪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고려시대 절터 역사의 장소 서울촌놈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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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살고 계시다면 대부분 다들 알고 계신 장소죠!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옛 고려시대 절터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죠! ^^ 거기서 만나 그 장소, 롯데 영프라자 뒷편에 있는데..어라... 영프라자는 문을 닫았네요. 청주에 흥업백화점에 이어 새롭게 변신을 시도했는데 결국... 코로나의 여파인지...장사가 안된것인지... ㅠㅠ

아무튼...



학창시절에는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크게 의미를 두거나 깊이있게 이곳에 대한 정보를 알려고 하지 않았죠! 그런데... 차츰 나이가 들고, 역사에 관심이 생기다보니 엄청난 장소라는것을 또 알게 되었죠! 그것도 저의 고향 청주에 이런게 있다는것에서 무언가 뿌듯함이랄까요? 몇달전 서울촌놈에 나온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TV를 통해 보셨을 텐데요. 

무언가 얼핏보면 그냥 봉화대 같은 물건인가? 아니면 깃발같은것을 높게 꽃아서 보이게 하는 표시인가 ? 뭐 그렇게 생각해 볼 수있는데요.

과연 이것은 무엇을 하던 물건?시설이었을까요?장소였을까요?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은 국보 제 41호랍니다. 국보 아시죠? 그만큼 역사적인 값어치가 대단하다는 것인데요.

이곳은 전국적으로 현존하고 있는 당간 중 지정된 당간은 총 네개라고 합니다. 그중 국보는 이곳이 유일하고요. 예전에 용두사라는 절터가 있더 자리이고, 이것을 그 사찰입구에 깃대의 일종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기록이 가장 희미한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이고요.

고려시대 962년인 광종13년에 주조 되었다고 연통의 표면에 쓰여 있답니다.



고구려 이전의 시대의 나라들은 사실 너무 오래되어 기록이 남아있기가 힘들어 더욱 역사를 공부하거나 그와 관련된 정보를 얻기 힘들잖아요.

그와 반면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많이 소실 되었고, 고려시대 역시 조선의 태조와 태종 그밖의 초기 왕들에 의해 파괴되고 없어지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나라의 역사도 서로 물고 뜯고, 자기들의 정당성을....또 안좋게 쓰여지거나 했던것들은 모조로 파괴를 하고 없앴다고 하네요.

그런반면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알수록 묘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무어라 쓰여있지만 ^^ 이것을 해석해서 어디 나와있는 사료 같은게 없나? 진짜 한자는 너무도 어려운듯 ... ㅠㅠ

아무튼 이곳은 고려시대 용두사라는 절의 깃대를 꽂아두던 깃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옛 중국 문헌을 보면.. .고려시대 사람들은 책을 수출할 정도로 학식이 뛰어나고, 글을 읽을 수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목욕을 즐겨해서 청결하고, 남녀의 지위가 동등했다라는 뭐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와는 정 반대의 이야기들이 많네요.


유교로인해 조선시대는 진짜 암울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또 그 속에서 한글 창제와 뭐 기타 여러가지 좋은것도 있고, 역사는 시간이 흐른뒤에 평가하는 뭐 그런것이긴 하지만 너무 나쁘다고만 또 너무 좋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죠! 

결과론 적으로 보면 분명 흑과 백은 있으니까요.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고려시대 유적 역사의 장소 절터 ... 

역사를 잊은 민족의 미래는 없다고 하는데...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정말 틀리거나 일제 시민사학에 찌든 그런 교육이 제법 있는거 같긴 합니다.


우스게 소리로 지금은 알고 있지만 백제 의자왕의 삼천궁녀는 정말 터무니 없는 소리긴 하더라고요. 조선시대에 궁녀가 3천명이 안되었다고 하는데... 

신라가 정말 백제에세 당한 치욕과 무언가 챙피한것들이라고 표현해야할까요? 그런게 많았나 봅니다. 


물론 제가 듣고 생각하는게 전부 100% 맞는게 아닐수도 있지만 ...아무튼...

역사...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의문도 많이 생기고, 참... 역사는 어렵고 복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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